나를 다시 세우는 1년

나를 다시 세우는 1년

Mar 12 ·
11 Min Read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퇴사

때는 2023년 11월 말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 신규 프로젝트를 배포하고 맞이한 첫 주였다. 디자인 개선 작업과 새로운 기획에 대한 회의가 예정되어 있어 이번 주도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근데 회사에 도착하고 보니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이를 느낀 지 30분쯤 지났을까. 회의실로 모두 모이라는 슬랙 메시지가 올라왔다. 모든 구성원이 모인 자리에서 회사의 경영 사정이 안 좋아져서 권고사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면담 후 바로 퇴근하게 되었다.

믿기지않는 현실과 계속되는 우울감

이렇게 회사를 나오게 된 건 처음이라 믿기지 않고 멍했다. 그래서 마음이 좋지 않고 슬펐다. 슬퍼한다고 바뀌는 일은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떨쳐버리려 하였다. 그동안 회사 업무에 바쁘다고 미뤘던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며 바쁘게 지내면서도, 하루 만에 출근할 곳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를 때마다 우울해졌다.

운동을 시작하며 몸과 마음을 다잡다

공교롭게도 8월에 등록한 PT의 첫 수업이 퇴사하고 며칠 뒤에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에 집중하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의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 목적은 부상을 당하지 않는 몸이 되기 위해서였다. 당시 풋살을 취미로 한 지 1년이 되었을 때인데, 실제로는 부상 때문에 아파서 못한 시간이 길었다. 1분 뛰고 혼자 아파하는 그런 몸이었다. PT 첫날이 등록일보다 늦어진 것도 그 사이에 허리가 안 좋아져서였다. 이건 일한다고 오래 앉아있어서 그런 거였지만.. 치료 때문에 퇴근 후에 정형외과로 출근하던 일을 청산하고 드디어 운동 센터로 가게 된 거였다.

운동이 아니라 재활부터 시작해야 했다

PT 첫날에 부상 이력과 현재 몸 상태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말씀드렸다. 그리고 간단한 운동 능력 테스트를 했는데, 트레이닝 코치님은 여태 풋살을 했던 게 신기한 일이었다고 말씀하셨다. 근육이 없어서 힘줄과 뼈에 부담이 가고, 사소한 충격에도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몸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서 있지도 앉지도 못하는 몸이었고, 걷는 자세도 올바르지 못했다. 우선 재활을 시작해야 했다.

인생의 기반이 될 건강한 몸, 강한 체력을 만들기로 하다

어릴 때부터 체력이 좋지 않아서 고생을 했는데, 재활을 시작하면서도 예외는 없었다. 엄청 힘들었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일을 했나 싶기도 했다. 부상을 당하지 않는 몸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이참에 건강하고 강철 체력이 되어보자 마음먹었다. 체력이 좋아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모르지만, 듣기로는 집중도 잘 되고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도 좋아진다고 들었다. 앞으로 일을 하고, 인생을 살면서 가장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게 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기회라고 생각하고 몸에만 신경 쓰기로 하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놓쳤던 기본을 바로잡다 (운동, 수면, 식사)

몸을 위해서는 부수적으로 더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회복을 위해 수면 시간을 늘리고, 식사도 세 끼 건강하게 챙겨 먹어야 했다. 바쁘다고 배달음식만 주문해서 먹다가 처음으로 밥을 하고, 간단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몸에 익지 않아 이 또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삶의 다시 세팅하는 느낌이었다. 일찍이 습관이 들었으면 좋을 일들을 이 기회로 하게 되었다. 운동을 시작한 후에는 운동, 수면, 식사 이 세 가지에만 몰입하며 지냈다. 이전에는 졸업, 취업, 직장 생활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기본적인 것을 챙길 여유가 없었고, 이것이 내재화되기에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 오히려 갉아먹었다. 그래서 항상 생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동경하던 선수들의 자기 관리, 직접 실천할 기회를 얻다

나는 항상 이런 관리가 일상화된 스포츠 선수들의 생활을 부러워했다. 그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위해 운동, 식단, 수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모습에 특히 그랬다. 선수들에게 이런 자기 관리는 당연한 일상이자 직업적 책임이지만, 직장인인 나에게는 사치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이러한 관리가 내 업무 능력 향상에도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다만 선수들처럼 전문 트레이너나 영양사와 매니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일과 병행하며 그 방법을 내재화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퇴사로 인해 그 기회가 주어진 거라고 느껴졌다.

직장 복귀의 기회, 하지만 더 큰 목표를 선택하다

여정 중간에 감사하게도 직장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다. 경제적으로 유혹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아직 목표의 절반도 이루지 못한 시점이었고, 이렇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1년이 지났고, 마침내 ‘아프지 않은 몸, 정돈된 생활 습관’이라는 목표에 도달했다. 이 1년은 내 몸과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스스로 생활을 관리할 수 있는 내재 역량을 갖춘 소중한 시간이었다.

완성된 자기 관리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다

선수는 재활 후 경기장으로 복귀하듯이 나는 이제 직장으로 복귀해 보려 한다. 이는 몸의 재활뿐만 아니라, 나를 다시 세우는 기간을 거친 후에 맞이하는 실전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좋아진 체력으로 일에 임할 수 있게 될 것이 기대된다. 물론 그 안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선수가 다시 부상을 당하는 것처럼 내 몸과 마음, 생활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따라서 실전에 맞는 전략 수정도 필요할 것이다.

다행히 지난 1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한번 제대로 닦아놓은 기반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설사 흔들린다 하더라도 회복 속도는 전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알게 되었다. 운동선수의 루틴이 경기력을 위한 것이듯, 나의 자기 관리는 업무와 삶의 질을 위한 투자라는 것을 말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앞으로의 수십 년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Last edited Mar 18